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 당한 이야기
출장 중 바르셀로나를 잠시 들를 일이 있었는데, 여기서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하는 일이 있었다. 구입한지 4개월도 안된 S23 울트라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매우 짜증이 났고, 생각하면 지금도 짜증이 나지만 혹 다른 분들이 참고하고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을까 하여 기록하여 둔다.
개요
7월 29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구경하다가, 근처 벤치에 잠시 앉았다. 이 때 가장 큰 실수를 한 것이, 핸드폰을 가방 주머니에 넣은 것이었다. 백팩을 벤치에 내려 놓고, 그 옆에 앉으면서 백팩 양 옆의 주머니에 핸드폰을 놓았는데, 아마도 소매치기범이 핸드폰을 보게 된 듯 하다.
갑자기 웬 외국인 하나가 꼬깃꼬깃하게 접힌, 코팅된 지도를 들이 밀더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데, 알아 듣지도 못하고 돈 달라는 이야기일 것인 듯 해서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그 친구를 보았다.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영어 못하면 저리 가라고 몇 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2분 정도 있다가 가버렸다.
약 5분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핸드폰이 없다. 아차 싶었는데, 금새 방금 그 녀석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더라. 바로 근처 경찰을 찾아서 문의를 했더니, 그런 일이 발생해서 유감이라며 근처 경찰서를 알려 주더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북쪽으로 약 10분 정도 걸어간 것 같다. 걸어가는 길에 전화를 계속 걸어봤는데, 두 번은 신호가 가더니 전원이 꺼진다. 도둑 맞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7월 29일, 경찰서.
경찰서라기 보다는 차라리 지구대 같은 느낌의 장소였다.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네 번째 정도로 줄을 서게 되었다. 여기서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행정 처리 능력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 경찰이 세 명 정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원 접수는 한 명이 받더라. 경험 상 우리나라 경찰이었으면 지구대 관리반이든 순찰팀이든 직원이 여러 명이면 하나, 둘 씩 붙어서 바로바로 처리하고 전산 입력도 바로 할텐데 말이지. 여튼, 거의 두시간을 기다려서 경찰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서류를 하나 쓰란다. 서류를 채워넣고 제출하니, 사본을 하나 만들어줄 테니 기다리라고 하더라. 경찰관은 참 친절했는데, 어째 업무 처리 속도는 영 빠르지 않았다. 약 30분 뒤에 문서의 복사본을 하나 준다. 핸드폰을 찾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혹여나 여행자 보험 등에서 보상 받을 때 필요하리라는 생각으로 신고를 한 것인데, 그런 것 치고는 서류 만드는데 약 세 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핸드폰만 털렸다는 것. 내 앞의 독일 친구들은 여권, 항공권이 담긴 가방을 털리는 바람에 굉장히 난감해 하더라.
7월 29일, 바르셀로나 공항
세비야로 넘어가야 하니 공항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여태까지 웬만한 결제나 문서 처리를 핸드폰으로 하고 있었던 지라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여권은 털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가방에 가지고 있던 노트북으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결제는 당연히 실물 카드나 현금으로만... 택시를 잡을 때 보통 어플을 써서 잡았는데, 스페인에 온지 약 3주가 다 되어서 그냥 길에 지나가는 택시를 처음으로 잡아봤다.
7월 29일, 세비야
분실 신고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연락을 할 방법이 없다고만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랬던 듯 하다. 노트북으로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그냥 하루를 날렸다.
7월 30일
오후 쯤 되어 노트북으로 분실신고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SKT를 접속해봤더니, 이미 정지처리가 되어 있더라. 정지 사유가 가관이었다. '붕/편법 로밍'으로 인한 회선 정지라고 하더라. 일단 회선 정지는 된 듯 하니 큰 문제는 없겠다 싶어 전화를 하려고 애쓰지는 않았고, 고객 센터로 문의 메일을 하나 날려봤다. 해결을 하려면 결국 고객 센터로 연락을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인 듯 해서, 출장이 끝나고 귀국 하면 해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핸드폰이 없는 생활을 했다. 각종 인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매우 마음이 편하게 지낼 수 있어 좋았다. 온갖 연락이 다 끊어져 버렸으니까.
다만,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각종 정보들은 조금 우려스러워서 구글을 통해 핸드폰 초기화 명령을 내려 놓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 도적놈이 재활용하지 못하게 아예 벽돌을 만들어 버리고 싶은데, 구글로는 그게 안되더라. 생각 같아서야 원격 신관 같은 걸로 터지는 폭약을 달아놔서 그 놈 손목이라도 날리고 싶긴 하다만. 이미 지나간 일이라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8월 10일
귀국 이후, SKT에 전화를 했다. 회선에 대한 정지는 바로 풀렸고, 유심도 새로 발급받을 수 있게 조치를 받았다. 다만, 혹시나 해서 추가 질문을 했더니...
"혹시 도난 이후에 발생한 추가 비용라던가 금전적인 부분은 없나요?"
"현재 로밍 요금이 87만원이 부과 되어 있습니다. 불/편법 로밍으로 판단되어 회선이 정지가 되기 전에 사용한 요금으로 보입니다."
"... 구제 방안이 혹시 없겠습니까?"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상담사님 말씀인 즉, 이 도적놈이 유심을 뽑아 다른 핸드폰에 삽입하여 국제 발신 통화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가능한 이야기다. 데이터 로밍은 요즘 SKT에서 바로 로밍이라고 하여 일정 데이터 트래픽이 넘어가면 QoS로 속도를 조절하는데, 일반 통화는 그런게 없으니까. 다행인 것은, SKT 자체적으로 전일 대비 특이 사항이 발견되면 자체적으로 회선을 정지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87만원인게 다행인건지. 출장이긴 했지만 여행비용 100만원 더 나갔다 쳐야지 했다. 사실 어찌 보면 소매치기 천국이라는 바르셀로나에서 정신 놓고 있었던 내 잘못도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으니. 다행히, SKT에서 연락이 오더라.
"통화 내역에서 불/편법 로밍 통화로 확인되는 79만원에 대해서는 요금을 면제 해드리게 되었습니다."
통화 내역 조회에 동의를 하니 SKT에서 통화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말이 안되는 통화에 대해서는 감면해준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최근 몇 개월간 SKT를 사용하는 것에 꽤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굳이 비싼 요금 내면서 사용도 안하는 멤버십이니 뭐니 VIP로 있으니, 알뜰폰을 쓸까? 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도 귀찮아서 계속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게 이번에 큰 역할을 해준 듯 싶었다.
다행히 SKT 덕에 꽤 일이 크게 번질 수 있었던 것을 잘 막은 듯 하다. SKT에 고맙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번 경험을 통한 교훈..(?)
1. 역시 나는 유럽을 별로 안 좋아한다.
2. 국내는 몰라도 해외 로밍은 대형 통신사를 쓰는 게 괜찮을 것 같다.
3. 유럽 나갈 때에는 최신 핸드폰은 들고 나가지 않아야 겠다. 아니면 백업용으로 구형 기종을 들고 가던지.
4. 어쨌거나 유명 관광지에서 정신 놓고 있지 말자.
5. 여행자 보험은 무조건 들자.
아, 경찰에 신고한 것은 어찌 되었느냐면.
그 이후로 이메일이나 뭐나 연락은 아직 한 번도 못받았다.
사실 찾으리라 기대는 1도 안했고, 신고한 목적이었던 여행자 보험은, 생각해보니 내가 가입을 안해놨더라. 거기에, 회사에서 지원하는 여행자 보험은 개인 물품 도난/분실은 보장을 안해준다고. 평소에 해외 나가면 항상 최고 보장으로 맨날 여행자 보험을 들었는데, 왜 이번엔 안 들었을까. 왜 하필 이번에 보험이 필요한 상황이 터졌을까. 모를 일이다.
130만원짜리 교훈을 크게 얻었다. 개당 26만이니 싼건가?
PS/ 핸드폰 도적 놈은 간절히 바라던대 최대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기 바란다. 너를 포함한 가족과 후대까지.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 당한 이야기
2023. 8. 24. 14:52